[인터뷰] 유아인이 말하는 유아인의 이십대, 그리고 서른

노윤정 기자 idsoft3@reviewstar.net
입력시간 : 2015-09-19 11:12:07

[헤럴드 리뷰스타=노윤정 기자] 요즘 가장 ‘핫’한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유아인이 떠오른다. ‘베테랑’으로 ‘천만 배우’ 타이틀을 갖게 된지 불과 한 달여. 그가 이번에는 사도세자 역을 맡아 관객들을 찾는다.

‘사도’는 이번 가을 최고의 기대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이다. 개봉 전부터 예매점유율 과반을 차지했고, 개봉 이후에는 압도적인 차이로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같은 관심과 폭발적인 호응에는 ‘거장’ 이준익 감독, ‘천만 배우’ 송강호의 힘도 컸지만, ‘대세남’ 유아인의 이름도 한 몫을 했다. 유아인은 그 중압감에 무섭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태도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일까.

“‘베테랑’ 같은 경우는 예측할 수 없었던 갑작스러운 기회와 선택이었고, ‘사도’는 제가 아주 오래 준비하고 기다려오고 머릿속에 그려왔던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확히 딱 ‘사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연기나 스타일, 캐릭터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작년 이맘때쯤 촬영이 끝났었는데 빨리 개봉하길 기다렸었어요. 떼쓰듯 이건 내 20대 때 어떻게든 나와야 한다고 했었죠”

유아인은 ‘사도’를 자신의 ‘정방향’이라고 표현했다. 배우 유아인이 가고자 했던 방향성 안에서 20대의 최종적인 작품.

“‘사도’는 제가 계속 계단을 밟아왔던 것들의 정방향인 것 같아요.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해도 그곳에 도착할지는 미지수거든요. 나는 이런 성질을 가지고 날아가고 있는데 그게 정말 과녁에 꽂힐지, 어느 구석에 꽂힐지는 미지수잖아요. 제가 저 자신을 발견하고 그 방향성으로 나아갔을 때 마주할 수 있었던 과녁이 ‘사도’라는 과녁이 아닐까 싶어요”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새로울 것은 없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세자. 임오화변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이고, 영화가 정통사극을 표방하는 만큼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도 적다. 하지만 유아인에게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의문이었다. ‘과연 나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한 줄 이상으로 알고 있는가’라는 의문 말이다.

“저 자신한테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사실 사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어보면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제 주변 사람들도, 그리고 관객 분들도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역사를 좋아하셔서 디테일을 알고 계시고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 다들 우리가 한 줄 정도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인물의 감정이나 디테일한 심리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달되는데, 사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흥미진진한 방법일 수 있겠다, 그리고 충분히 가치 있는 작업이겠다 싶기도 했고요”

유아인이 사도세자로 분했을 때 그의 뒤에는 조선 21대 왕이자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 역을 맡은 대선배 송강호가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호흡이었고 선배 배우 송강호와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유아인은 행복이고 행운이라고 느꼈다. 이번뿐 아니라 이전 작품에서도 유아인은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했고, 더 치열하게 연기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때문에 “불충분하나마 그 분들 앞에 설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선배님들과 할 때는 더 긴장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더 편하기도 해요. 그 안에서 확실하게 더 좋은 결과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배우의 앙상블이라는 게 일방적이진 않겠죠. 선배님들과 주고받을 때 후배 배우로서 더 긴장되고 더 치열하게 연기하고 더 진심이 되고자 애쓰는 게 있어요. 금방 들통 날 테니 얕은 수를 쓸 수도 없고”(웃음)

“40대와 20대가 공동주연이면서 김윤석, 송강호, 황정민 선배님처럼 공고한 위치를 가지신 분들과 함께 하는 작품은 무조건 해야 할 작품으로 여겨지죠, 젊은 배우들에게. 결과는 어찌 될지도 모르고.(웃음) 호기죠, 그냥 들이대는 거고. 저 역시도 충분히 제 자리를 만들지 못한 배우였었고, 왜 묻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겠어요. 그런 계산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배우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았죠”

하지만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유아인 역시 눌림이 없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선배들 앞에서도 유아인은 제 연기를 다했다. 어떠한 배역이 주어지는 순간 곧 유아인이라는 배우가 그 캐릭터 자체가 됐다. 자연스럽게 유아인에게는 그 나이 대에서 단연 독보적인 연기력을 지닌 배우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낯간지러울 수 있는 호평들에 유아인은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자만하지는 않았다.

“나이라는 게 양날의 칼 같은 측면이 있어요. 기대치가 낮다는 어드밴티지도 있고, 어느 정도 해내도 연기적인 평가에 있어서는 조금 냉정하다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연기를 했으니까 젊은 배우가 연기적인 평가에서 어떤 대상이 되는가에 대해 많이 느끼면서 지내왔었거든요. 잘해도 ‘그 순간 잠깐이고, 요행이다, 다음을 예측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시는데,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기대일 수도 없고 신뢰를 가질 수 없는 말이 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어드밴티지도 있죠. ‘베테랑’에서 유아인이라는 마냥 어릴 것은 배우가 악역 캐릭터를 자기 식대로 소화해냈을 때, 제 연기력 이상으로 큰 평가를 해주시는 걸 보면서 서운한 마음이 씻어졌달까요”(웃음)

“10여 년간 20대의 배우로 살아오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지’라는 생각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바라보는구나’를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베테랑’이라는 작품에서 나름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대치가 낮은 상황에서 조태오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젊은 배우의 얼굴로 악역 연기를 했을 때 강렬하게 다가갈 것인가, 혹은 무리수가 될 것인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결과를 맺은 것 같아요”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로 변신해 소름끼치는 악역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뇌리에 남기더니,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가엾은 인물을 맡아 그 강렬했던 전작의 이미지를 단번에 지워버렸다. 적어도 ‘사도’ 속 유아인에게서 조태오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제 옷 입은 듯 마침맞게 표현해낸 유아인의 연기력에 의문부호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스스로가 보는 자신의 연기는 어떨까. 유아인 스스로가 느끼기에 현재 시점은 ‘슬럼프를 조금 넘어선 상태’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좋지 아니한가’ 이런 작품을 할 때는 아주 몰입감이 좋은 상태였어요. 아주 깨끗하게 그 인물이었던 상태였죠. 그 시기를 지나 드라마를 시작하면서는 분리된 자아가 있는 것처럼 내가 연기하는 감정과 다른, 또 다른 나를 지켜보는 제3의 눈을 갖기 시작했어요. 외부를 의식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슬럼프가 찾아왔던 것 같아요”

“슬럼프를 느끼면서 많은 시도들을 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슬럼프라고 그렇게 못하는 것 같지는 않고.(웃음) 내가 어떻게 연기를 펼쳐야 할지에 대한 혼란의 시기였어요.여러 가지 의문들을 품었던 시기죠. 그 전에는 어마어마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성과 감성, 그 두 가지가 아주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꽤 잘 분리된 상태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연기하는 순간 효과를 상승시키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 같아요”

“‘밀회’를 하면서 아주 짜릿한 경험을 했어요. 이 분리된 두 개의 자아가 완전히 독립된 상태로 같이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순간순간 있었거든요. (…) 전체라는 틀 안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고, 관객을 지치지 않게 만들어야 하고, 너무 부족하지 않아야 하고. 그런 부분에서 ‘객관’, ‘이성’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갓 영화 시작했을 때는 이성적인 순간들이 굉장히 불순물 같다고 느꼈었죠”

유아인에게 2015년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촬영한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나이도 숫자 앞자리가 바뀌었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유아인에게 자신의 20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룬 시간들이었다. 자신에게 ‘스타’라는 수식어가 붙고, 일 년에 광고를 수편 씩 찍고, 작품 안에서 주연을 맡는 일들은 사실 크게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기대치보다 큰 성공,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었다.

“욕심냈던 건 오로지 하나예요. 기록적인 청춘물을 남기는 것. 저는 그것에 대한 강렬한 욕심이 있었거든요. 그 순간을 위해 타협하기도 했었고,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나라는 사람이 아무리 이런 자질과 성분을 가진 인간이라도 내가 스타가 돼야 가능한 일이라면 스타가 될래’ 이럴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 다른 것들은 이루어졌는데, 막상 기록적인 청춘물은 남기지 못했네요”

“영화사에 기록적인 청춘물일 수도 있고, 제 개인적인 청춘물일 수도 있는데, 그런 청춘물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다 장사꾼 같지만 사실 우리의 본질은 예술가인데, 그 본질에 가장 가까운 욕망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죠”

배우 유아인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이 시대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청춘물에 출연할 유아인의 모습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스물’처럼 요새 애들의 감수성을 통통 튀게 담아낸 그런 영화도 너무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어두운 부분들을 담아낸 영화들도 독립영화 쪽에서는 많이 시도되는데, 상업영화에서는 다뤄지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이 정도 했으면 누군가 만들어주지 않을까요?”(웃음)

(사진=민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