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강호, 더할 나위없었던 송강호표 영조

노윤정 기자 idsoft3@reviewstar.net
입력시간 : 2015-09-22 16:52:23 수정시간 : 2015-09-22 17:13:49

[헤럴드 리뷰스타=노윤정 기자] 영화 ‘사도’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왕의 남자’로 첫 천만 사극 영화를 탄생시켰던 이준익 감독이 만들어낸 정통사극이라는 점,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유아인이 비운의 세자 사도로 분한다는 점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그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배우 송강호의 이름이 예비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이야기다. 영화 속에서 송강호는 조선 21대 왕이자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 역을 맡았다. 아버지이지만 언제나 왕이어야 했고, 왕이지만 결국은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던 영조의 딜레마는 송강호 안에서 살아났다.

개봉 전부터 영화에 쏟아진 지대한 관심은 배우에게 기분 좋은 부담이다. 송강호는 “스코어는 다다익선이겠죠”라고 웃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긴장감과 부담감이 느껴졌다.

“관객분들이 어떻게 판단을 하실까, 부담이 되죠. 물론 어떤 영화든 만인이 다 만족하는 영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셔서 힘이 납니다만 지켜봐야겠죠”

송강호는 평소 이준익 감독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따뜻한 시선’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한 번쯤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쉽게 인연이 닿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사도’ 시나리오가 송강호의 손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사도세자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많이 다뤘던 것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건을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루고, 역사를 그렇게 정공법으로 자신 있게 펼쳐낼 줄 몰랐어요. 그래서 좋은 느낌을 받고선 바로 한다고 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님과 작업하게 돼서 좋았죠”

‘사도’는 이준익 감독의 말마따나 철저하게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사건들, 대사들 90% 이상이 실제 사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 점에 송강호는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송강호는 친근한 어투로 관객들이 영조 캐릭터를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했으며,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지난 영조 그 자체가 되어 영화가 전하는 비극성과 거기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배가시켰다. 극본과 배우의 합,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왕은 어떠할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속에 세뇌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나오는 ‘(세자에게) 1년 중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드니?’ 이런 대사 같은 경우, 사료를 보면 실제로 영조대왕이 그런 대화를 나누셨어요. (…) 그 분도 인간인데 편하게 이야기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심지어 신하들에게 욕설을 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어떠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드라마를 만들어온 것 같아요. 그런데 ‘사도’는 지향점이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서 표현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준익 감독이나 배우 송강호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그대로 있는 대화예요. 애드리브는 한 마디도 없어요”

송강호라는 배우가 연극을 하다가 영화로 진출한지 어느덧 20년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많은 작품을 했지만 그동안 왕 역할을 맡아본 적은 없었다. 첫 도전, 당연히 부담감이 따랐다. 자신에게 둘러진 어떠한 ‘틀’을 깨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자니 영조의 느낌을 받아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있다고 해서 그 느낌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단 직계 후배이자 영화 속에서 홍인한 역을 맡은 배우 최덕문을 이끌고 2박 3일, 1박 2일 두 번의 합숙을 떠나기도 했다.

“‘관상’을 할 때는 ‘송강호 사극 처음 아니야? 어울리겠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왕하고는 안 어울리지 않나?’라고 하시기도 했는데, 누가 왕을 본 건 아니잖아요(웃음)잘못된 틀은 아니고 자연발생적인 사고의 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을 깨려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배우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영화 ‘명량’ 속에서 이순신 장군을 표현해야 했던 배우 최민식은 한 인터뷰를 통해 ‘단 10분만이라도 이순신 장군님을 뵙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실존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감이 따른다는 뜻이리라. 이 말을 전하니 송강호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실존하는 인물이지만 우리(배우)가 보지를 못한 데서 오는 막연함, 그걸 어떻게든 자기 안에 구체화시켜 들어오게 해야 하거든요. 외모, 외형이 중요한 건 아니고요, 인물의 본질, 느낌, 이런 것들을 느끼려고 했죠”

“왕이라는 존재가 화려할 것 같지만 얼마나 외롭겠어요. 신하고 가족이고 지켜만 볼 뿐이지 위로를 주는 존재는 없잖아요. 또 자신의 연약함을 들키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있고. (…) 영조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역사 공부도 많이 하고,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 많은 사료들을 꼼꼼히 공부했습니다”

철저한 준비의 결과는 연기로 표현됐고, 화면에 담겨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됐다. 극 중 왕이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자식이 없는 관객들까지 영조의 감정에 동화되어 하이라이트 장면에 이르면 끝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변호인’에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더니 ‘사도’에서 또 다른 경지에 이른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송강호는 자만하지 않았다.

“어떤 작품을 하든 100% 만족을 하는 배우는 없겠죠. 특히 자기 연기. 자기 연기가 제일 부족하게 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이준익 감독의 내공이 다시 한 번 느껴지는 거예요. 감독님 전작들과는 다른 문법의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감성의 결이 살아있으면서도, 장르적인 힘이 많이 느껴졌어요. ‘사도’가 주는 장르적인 재미가 근래에 참 보기 힘들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반갑고, 역사를 비꼬고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대로 표현해내는 힘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우리(배우)도 인간이기 때문에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어요. 후배들한테도 사석에서 가끔씩 이야기하는데 부족한 게 당연한 거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매 작품마다 어떻게 완벽하겠습니까. 완벽하지 않더라도 부족한 것에 대한 인식, 긴장은 유지하려고 합니다. 좋은 연기가 나오면 다행이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걸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영화 ‘사도’의 가장 신선한 점은 임오화변을 ‘가족사’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영화는 영조-사도세자-정조 3대의 비극을 ‘부자(父子) 관계’에 초점을 맞춰 그려냈다. 보다 보편적인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한 결과, 관객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송강호 역시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돌아봤다며 웃어보였다.

“‘아들한테 잘못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살짝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영조와 사도의 문제점은 소통의 부재인데,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게 부족하다, 싶었어요. 사실 이 비극은 결국 소통의 부재잖아요. 사료를 보면 사도세자가 긴 세월 비행을 일삼아요. 그게 영조한테 들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느 날 사도세자를 불러서 이유를 묻습니다. 그때 사도세자가 제가 울화가 올라와서 그렇다고 말하며 진솔한 대화를 딱 한 번 나눠요. 그래서 영조가 앞으로 잘 지내보려고 노력 하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는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영조와 사도세자가 서로 노력했다면…. 소통의 부재라는 게 무서운 거죠”

“이준익 감독님은 임오화변의 본질적인 문제를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정치역학적인 문제가 임오화면의 문제일까, 아니다. 이건 군주인 아버지와 세자인 아들의 문제다, 그 시각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 이 영화의 가장 궁극적인 지향은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천륜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겠죠”

‘변호인’ 이후 만 2년여만의 작품 출연. 길다면 긴 공백을 깨고 나온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송강호에게 ‘사도’는 남다른 애착이 가는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역시 송강호'라는 감탄이 나오게 하는 그의 연기를 볼 수 있어 관객들에게도 반가운 작품이 될 듯하다.

“잘 알고 있는 장르지만 이렇게 묵직하고 원초적인 힘으로 전달하는 영화는 드물고, 관객분들께도 반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저런 이야기도 있구나’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영화니까 어떤 이야기보다도 새로운 점이 있다는 걸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박푸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