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윤석, “‘검은 사제들’,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

노윤정 기자 idsoft3@reviewstar.net
입력시간 : 2015-11-05 16:48:34 수정시간 : 2015-11-05 16:59:55

[헤럴드 리뷰스타=노윤정 기자] “결국 우리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올해 ‘쎄시봉’, ‘극비수사’로 관객들을 만났던 김윤석이 ‘검은 사제들’로 다시 한 번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자연스럽게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으며, 그의 출연한 작품은 왠지 모를 기대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김윤석은 영화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에서 뺑소니 교통사고 이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한 소녀 영신(박소담 분)을 구하기 위해 모두가 반대하는 위험한 예식을 준비하는 김범신 신부 역을 맡았다.

제작보고회 당시 그는 외국 영화제 참석하러 가면서 ‘검은 사제들’ 대본을 읽었거, ‘단숨에 다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며 작품 선택의 이유를 밝혔던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 역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재미있었어요. 이야기가 밀도가 있었고요”라며 탄탄한 대본에 끌렸음을 고백했다. 완성된 작품에도 역시나 애정을 드러냈다.

“100% 마음에 드는 게 있겠느냐만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감사하죠.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라는 긍정적인 평을 해주시니까 보람도 있고요”

김 신부 역할은 결코 쉬운 역할은 아니었다. ‘신부’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 동시에 그의 행동에서 말미암은 의심스러운 부분을 모두 표현해내야 했다. 순백일 것만 같은 신부가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양면적인 부분을 모두 ‘김 신부’라는 캐릭터 안에 담아야 했다.

“캐릭터 표현할 때 가장 염두에 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인 면이었어요. 이런 사람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무너질 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껄렁껄렁하고 불친절한데,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신부를 너무 먼 존재로 만들지 않고, 심지어 의심까지 들 정도로 우리 가까이 있는 신부의 모습으로 보여 달라고도 하셨고요”

무심하고 세상 모든 일을 달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신부는 영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예식에 뛰어든다. 그리고 주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때도 꿋꿋한 게 맡은 바 할 일을 해 나간다.

“‘왜 영신을 그렇게 구하려고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부님한테는 평생의 숙원이고, 꼭 해야 하는 일인 거예요. 주님의 종으로서 악마를 물리쳐야 하는데, 신부님한테는 자기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아이인데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찢어지죠. 하지만 아이의 목숨뿐 아니라 영혼까지 물들어 버리면 종교적으로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거니까 아이의 영혼을 구해야 하는 거죠”

김윤석은 자신이 김 신부의 입장이었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그 선택의 근처에 가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영화 속 그는 영신을 구하는 예식을 앞두고 고뇌하는 김 신부 그 자체였다. 때문에 장재현 감독 역시 김 신부 역에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원했던 것이리라. 이 말을 전하니 김윤석은 “시나리오를 보니까 ‘나를 원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김윤석은 영화 속에서 감정적인 동요 없이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예식을 진행하는 내면의 힘을 보여주며 극의 무게감을 더했다. 김윤석이 안정적으로 받친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 후배 배우 강동원과 박소담의 호연은 극을 풍성하게 했다.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강동원, 그리고 한참 어린 후배 박소담은 김윤석 눈에 그저 대견스럽기만 했다.

“너무 남발하는 것 같아서 박소담 칭찬을 아끼고 있는데, 정말 대견하죠. 숙녀가 머리도 빡빡 밀고, 얼굴도 예쁘게 하고 싶을 텐데 트라우마 생길 분장까지 하면서 해내는 걸 보고 ‘이 친구도 굉장히 먼 곳을 보는 친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동원과 두 번째 호흡은 어땠냐고 물어보는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웃음) 더 편해졌죠.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생각도 하고요”

강동원과 함께 했던 전작 ‘전우치’와 ‘검은 사제들’ 모두 ‘퇴마’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차이에 대해 김윤석은 “‘전우치’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고, 이 영화는 땅에 딱 붙어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제 사부인 정 신부님(이호재 분)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병실에서 초라하게 죽어가고 있잖아요. 그리고 김 신부한테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허망하고 허무하다’고 하잖아요. 내 사부가 그러는데 얼마나 흔들리겠어요. 마찬가지로 최 부제한테 제가 ‘평생 술 없이 잠도 못자고, 악몽에 시달리고, 어떠한 보상도 없고, 아무도 몰라줄 텐데 그래도 이 일을 하겠니’라고 하죠. 종교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 이야기,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예요”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그런 희생들이 있어야 좀 더 세상이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런 고결한 희생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었죠. 그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밀도가 있었어요”

“악마 대사도 스피드가 빨라서 놓치게 되는 부분이 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행간의 의미를 보면 섬뜩한 게 많단 말이에요. 강동원의 미모에 가려서 그런 부분들이 희석이 된 것 같은데…”(웃음)

장재현 감독 역시 언론 시사회 당시 “영화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작은 다락방에서 세상을 구하는 아웃사이더 호랑이 둘과 천사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던 바 있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고뇌, 그리고 희생에 대해 것이라는 설명. 김윤석 역시 같은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테마, 희생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한테 있었던 거예요. 누가 몰라줘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서 하는 일이 있고. 살면서 늘 그런 갈등이 있잖아요. ‘역시나 아무도 몰라주네, 앞으로는 절대 손해 보는 짓 안해야지’, 늘 그런 갈등을 갖고 살잖아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부분을 깊게 들어간 이야기일 뿐이라는 거죠. 결국 우리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황해’의 면정학, ‘완득이’의 동주, ‘타짜’의 아귀, ‘극비수사’의 공길용, 그리고 ‘검은 사제들’의 김범신까지, 김윤석이 연기한 캐릭터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과 인간적인 면모가 묻어난다. 혹시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될까봐 우려되는 부분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저 웃으며 “이미지가 굳어지기에는 나이가 많아서…”라고 답한다. 어떠한 역할도 제 옷처럼 소화해내는 배우에게는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제 필모그래피는 제가 소신을 가지고 채워 나가요. 어떨 때는 ‘이런 센 역할은 이미지에 안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작품은 할 만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면 저는 해요. 좋은 작품을 함께 한다는 게 중요하죠”

“아무리 친한 사람이 뭘 같이 하자고 해도 시나리오 먼저 달라고 해요. 모든 일이 인맥으로 해서 잘 되는 일을 못 봤어요. 작품 선택의 기준은 시나리오입니다. 배우들은 사실 시나리오가 훌륭하면 다 해요”

작품 분석하는 시간만 한 달 이상을 투자하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김윤석. 그 시간들을 통해 작품의 행간을 읽고 캐릭터를 분석하는 방법을 연마해온 그는 좋은 시나리오에 대한 확실한 철학이 있었다.

“참 재미있는 건, 베이스가 약한 것과 짙게 깔려 잇는 것들의 생명력은 확연히 달라요. 좋은 시나리오는 좋은 소설하고 결코 다르지 않아요. 좋은 소설들은 생명력이 굉장히 오래가잖아요. 좋은 시나리오는 생명력이 있어요. 개성도 있고, 입장도 굉장히 명확하죠”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데뷔한 후 어느덧 27년. 연극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그러하듯 김윤석 역시 무대에 대한 갈등이 있지 않을까 싶어 물었더니 그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고 말한다. NG가 용납되지 않는 무대 위에서 실수 없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한 마디에서 작품에 임하는 그의 자세와 어떻게 그가 현재의 위치에 올랐는지, 왜 많은 후배들이 그와 함께하는 작품이라면 일단 하려고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제 연기요? 제가 볼 때는 오글거리죠. 자기 모습 보는 건 아직도 부담스럽고 오글거려요. 한 번씩 영화 채널에서 제 영화를 틀어주면 그냥 채널 돌리라고 해요. 그런 부끄러움은 아직까지 늘 있어요. 한 나이 70살이 되면 괜찮을지 몰라도 지금은 부족해보이고 부끄러워요. 또, 연기에 어떻게 만족하겠습니까”

(사진=양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