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새벽 “‘도리화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

김희은 기자 idsoft3@reviewstar.net
입력시간 : 2015-11-23 15:55:57 수정시간 : 2015-11-23 17:08:55

[헤럴드 리뷰스타=김희은 기자] 다소 평범한 외모와 차분한 말투.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묘한 매력이 심상치 않다. 만나는 작품마다 흡입력 있는 개성파 연기력으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 송새벽의 이야기다.

그런 그가 이번엔 수묵화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색채를 가진 영화 ‘도리화가’로 돌아왔다.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중 송새벽은 동리정사의 소리선생 김세종 역으로 등장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브라운관 속 송새벽의 신들린 듯한 북연주와 판소리를 보고 있노라면 ‘미친 것 같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 그는 “연습만이 살 길이다. 안 보이는데서 연습 많이 했다”며 수없이 반복했다는 말과 함께 미소 지었다. 사극에 판소리, 북 연주까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그에게 ‘도리화가’는 어떤 작품으로 다가왔을까.

“소리와 북, 처음엔 부담감이 상당했어요”

“처음에 망설였던 이유가 이 부분이에요. 북을 쳐야하고 소리를 해야 하고. 최소 2·3년은 연습을 하고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단기간에 연습하고 들어가서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어요. 감독님께 좀 많이 힘들 거 같다고 했더니 그렇게 따지면 국악원에 계신 분들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처음에 부담감이 엄청 많았어요. 관객들이 봤을 때 속된말로 뽀록이 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했죠”

“굉장히 연극적인 느낌이 많아서 더 좋았어요. 극에서 같이 한 판 놀고 소리를 하고 북을 치고. 장면에서도 관객들 앞에서 노는 부분들이 되게 쿵쾅거리더라고요. 이 작품에서 같이 한번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놀아나야 되겠지만, 그 부분이 가장 와 닿았던 거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소리와 북은 부담이었지만 그런 부분들이 관객들이 보기에도 신나하실 거 같고(웃음)”

극중 김세종 선생을 소화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을 터. 송새벽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맛깔스런 연기력은 이번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기에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판소리 실력이 더해지니 보는 사람 역시 흥이 날 지경. 문득 이번 캐릭터에 녹아들기 위해 그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몰입했을지 궁금해졌다.

“칼날 위에서 노는 듯 한 모습이 와 닿았죠”

“인간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웃음). 신재효 선생님과 김세종 선생님. 실존하셨던 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연기자와 흡사한 그런 느낌도 굉장히 많이 들었고, 그 점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는 시대에 어떻게 보면 그게 굉장한 창작이죠. 금기가 되어버린 건데 그것에 대한 도전과, 그 중심에는 신재효가 있지만 조력자로서 ‘내가 어떻게 든 진채선을 소리꾼으로 한번 만들어보겠다’라는 부분에서 인물에 대한 매력이 느껴졌어요”

“연극도 크게 말해서 종합예술이에요. 연극과 닿아있는 부분. 그래서 직접적인 호흡을 한다는 점이 더욱 끌렸어요. 어찌됐건,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원시적이고 매력있어요. 연극과 영화의 매력이 따로 있듯이 그 시대에 카메라가 어디 있었겠느냐 만은 지금의 저로 봤을 때 연극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위험천만한 칼날 위에서 노는 듯한 모습이 와 닿았죠”

‘도리화가’는 당대 최고의 판소리 대가 신재효와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 동편제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창 김세종 등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을 다룬다. 앞서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도 밝혔듯 그는 재차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점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출연을 망설였을 정도. 송새벽은 이 점에 대해 고심을 거듭했다.

“한번쯤 ‘잘하고 있나’ 보고 가시지 않을까요”

“분명히 촬영을 하고 있을 당시, 김세종 선생님의 영혼이 한번쯤 우리에게 와서 ‘잘하고 있나’ 보고 가시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소설의 한 인물, 희곡의 한 인물도 분명 이 지구상 어딘가에는 존재하실 거란 말이죠. 인물화가 안됐을 뿐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실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라면, 실존인물과 허구의 인물 둘 다 결국에는 같은 입장이 되는거에요. 그런데 실제의 인물이 됐을 때는 어떤 명확하게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표현하니’ 하면 안 되지 않을까, 그런 어떤 중압감이죠”

실화이니만큼, 영화는 역사 속 실존했던 장소와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전라북도 부안, 남원, 전라남도 순천, 충청남도 부여, 경상북도 안동과 문경, 경기도 수원, 용인 등에 이르기까지 장장 8개월간의 방대한 로케이션을 통해 얻은 다채로운 장관.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전국 곳곳의 절경들은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 그 역시 탄성이 절로 났다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우리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거의 팔도를 다 돌아다녔어요. 굳이 꼽자면 합천이 기억에 남아요. 황매산이라는 산에서 저희가 산등성이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요. 우리나라에 좋은 곳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기가 막히게 헌팅 하셨더라고요(웃음).”

“때 묻지 않은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에 ‘와 와 와’ 탄성을 지으면서 다녔어요. 특히 황매산은 타임머신 타고 조선시대로 날아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들판, 산 너무 아름다웠어요. 촬영 당시에는 혼자 명상도 많이 하고 되게 좋았죠. 큰 넓은 세상에 우리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이렇듯 ‘도리화가’는 러닝타임 109분 내내 아름다운 영상과 애틋한 선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 배우들 간의 찰떡 호흡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킬 전망. 그 중에서도 독립영화에서 기반을 다져 온 배우 이동휘, 안재홍을 언급하자 그는 ‘늘 같이 붙어 다녔다’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리고 ‘도리화가’의 유일한 홍일점 수지에 대해서는 ‘조금 놀랐다’며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지와 호흡,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죠”

“이동휘, 안재홍과는 늘 같이 붙어 다녔어요. 끝나면 그냥 안 보냈어요. 연습 끝나고 밥을 먹거나, 막거리를 한 잔 하거나 헤어지기가 싫더라고요. 그 정도로 너무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아무튼 ‘도리화가’를 찍으면서 저한테는 좋은 친구들이 생겼어요”

“수지 씨는 제가 조금 놀란 게 굉장히 큰 스타잖아요. 아무튼 그 친구가 음악도 하는 친구고, 전에 작품도 잘 봤었고. 같이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초반에는 ‘야 과연 진채선 역할에 예쁜 친구가 잘 어울릴까’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계속 연습을 해 가면서 ‘이미 나왔구나‘ 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되게 천진난만한 구석이 많고,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에너지를 갖고 있더라고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수지 씨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특유의 발랄함이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또 어린 진채선과 굉장히 많이 닮아있는 느낌도 많이 들었고, 감정선이 뭐랄까 굉장히 맑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들이 굉장히 좋았어요. 어디에 길들여지지 않은 맑음이 진채선과 굉장히 닮아있죠. 힘들 때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면서 좋구나 생각했어요”

송새벽은 천상 배우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는 한 역할을 위해 소리와 북을 갈고 닦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도리화가’ 개봉을 앞둔 지금, 참 열심히도 달려온 그에게 얻은 점은 무엇일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 ‘소리와 북’을 꼽는다.

“소리와 북, 정말 매력있어요”

“소리와 북이죠. ‘소리가 참 이런 매력이 있구나’ 하는 것을 배웠어요. 흔히 아는 ‘사랑가’나 ‘쑥대머리’, ‘적벽가’ 등 가사의 뜻을 보면 애절하고, 구슬프고, 야하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표현들이 많아요. 그게 정말 재밌어요. ‘그냥 다 표현하셨구나’라는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재고 따지고 절제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뜻을 알고 보면 그런 느낌들이 시원시원하고 좋았어요”

“타악기는 저도 처음 만져보는데 북은 정말 단조로워요. 나무에 가죽을 씌워서 채로 치는 것뿐인데, 계속 연습을 하며 배워보니 이게 마치 사람과 좀 닮아있는 거 같더라고요. 피아노나 기타 등 그런 악기들과는 조금 달라요. 되게 단순한데, 그런 부분들이 마치 통이 사람 몸통 같은 느낌. 되게 매력있어요. 단순한 ‘퉁 투투둥’ 소리뿐이지만 소리와 같이 어울렸을 때 굉장히 매력이고 질리지 않아요. 이것을 산에서 혼자 한다고 생각해보세요(웃음).”

그에게 있어 ‘도리화가’는 의미가 남다른 작품. 지금껏 경험 해보지 못했던 ‘소리와 북’이라는 존재를 깨우침에 있어 그는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또한, 자기만의 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듯 보였다. 그가 영화를 통해 그토록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송새벽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도리화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

“영화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봤어요. 눈시울도 자주 젖었죠. 촬영 끝난 지가 거의 1년이 되었는데, 아무튼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시간이 빨리 갔다는 느낌이 일상적인 시간의 느낌이 아니라 오래간만에 만난 친군데 얼마 안 된 느낌. 그런 느낌이었어요”

“자랑이라기보다는 제가 보고 느낀 점은 영화 자체가 북을 치고 판소리를 하는 영화라서 뭔가 어렵다거나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장르라고 하지는 않으실 거 같아요. 사제지간의 이야기, 그 가운데 소리가 있고 놀이가 있는 거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요즘 느낄 수 없는 감정과 살아내야 하는 아픔들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아닌가. 그 정도면 나이가 어린 관객 분들도 편안하게 잘 보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렵고 딱딱하지는 않을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은 현 시점, 그는 생각이 많은 듯 했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냐고 묻자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예상밖의 소박한 답변을 내놓는다. 스크린을 종횡무진 활약하는 배우 송새벽, 그 역시 배우 이전에 아내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든든한 아빠였다.

“밥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올해 안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제 아기가 태어나요. 다음 달에 크리스마스가 있는데, 아기랑 짧게라도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촬영이 생기면 어쩔 수 없는데 밥이라도 먹고, 사진이라도 찍어놓으면 좋지 않을까요?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보면 느낌이 다를 테니까요. 밥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사진=박푸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