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채원, "연기의 즐거움을 몰라서 계속하는 것 같아요"

윤지원 기자 idsoft3@reviewstar.net
입력시간 : 2016-01-11 10:29:30 수정시간 : 2016-01-11 10:53:45

[헤럴드 리뷰스타=윤지원 기자] 2016년 새해 첫 로맨틱 코미디 ‘그날의 분위기’를 돌아온 문재원. 조금은 답답하고 어리숙한 철벽녀이지만 귀여움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순정녀 ‘수정’ 역을 통해 로코강자의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배우 문채원에게 ‘수정’은 참 어려운 역할이었다.


“‘수정’이라는 캐릭터는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고 답답하면서도 여성스러운데, 연기할 꼭지점이 부족하고 큰 장애물이 없어서 어떻게 입체적으로 표현할까 걱정했어요. 평범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연기하기에는 참 어려워요. 평범한 여성스러움과 일상적인 자연스러움을 매끄럽게 표현하면서도 디테일을 잘 살려내는 연기가 어렵지만 잘 해내는 선배 연기자 분들이 있죠. 그래서 저도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그날의 분위기’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원나잇이나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들 치고는 자극성 없이 착하게 풀어낸 느낌이었죠. 시나리오 초고에는 조금 더 자극적이고 날 것 같은 느낌이 많았어요. 오래 전 기획된 시나리오였고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순화가 되었죠. 맛깔스러운 부분은 많이 빠졌지만 지금과 같은 서정성이 강해졌죠. ‘그날의 분위기’라는 제목과 맞는 것 같아요”
영화 ‘오늘의 연애’ 이후 1년 만에 다시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왔지만 전작과는 사뭇 다른 감성을 전한다. 코믹함은 줄어들었고 사랑에 신중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는 하룻밤에 대한 기대감을 놓지 않는다. 연이은 로맨틱 코미디 속 배우 문채원은 더욱 성숙해져 자신만의 영역을 오롯이 구축했다.

“사실 장르적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어려워요. ‘최종병기 활’보다 ‘오늘의 연애’가 더 어려웠고, 코미디 요소가 조금 더 빠진 ‘그날의 분위기’가 더 어려웠어요. 차라리 엄청 까부는 역할이었다면 마음의 안정을 느꼈을 것 같은데 기차를 타고, 차를 타고 장소를 계속 이동하니까 영화를 촬영하면서 받는 느낌이 조금 애매했어요. 기차 앞에서 ‘재현’과 헤어지는 장면을 찍고 ‘아 ‘그날의 분위기’는 이런 분위기구나’ 생각했죠. 그 신을 애잔하게 촬영한 테이크가 있었는데 영화에는 조금 더 라이트한 테이크가 사용되어서 조금 아쉬움에 남아요. 하지만 영화에 대한 제 개인의 만족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건 온전히 관객들의 몫이죠”

“두 편 연속 로맨틱 코미디를 해왔는데 많은 생각을 하면서 찍고 고민도 부담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감이 붙는다는 생각은 없어요. 동시에 여러가지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 오늘 연기할 것, 이 영화만 생각했죠. 하나를 끝내야 다른 걸 할 수 있는 성격이라 전작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오늘의 연애’를 찍고 난 후 바로 ‘그날의 분위기’를 이어 촬영하게 되어서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면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없었던 건 좋았어요”
오로지 한 작품 속에서 자신의 연기만을 생각하는 문채원은 10년 째 한 사람만 사랑하는 ‘수정’과 닮아있었다. 10년 째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파 온 그녀에게도 영화 속 원나잇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어렵게 다가왔다. 누구나 꿈꾸는 영화 같은 사랑에 배우 문채원과 인간 문채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영화를 찍고 나서 원나잇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건 영화에 득이 안 되겠죠?(웃음) 영화 속 그날처럼 분위기가 잘 만들어져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는 사람과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호불호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현실적으로 저에게 누군가 가능하냐고 물어온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아요”

영화 속 ‘수정’ 캐릭터처럼 배우 문채원도 끊임없는 고민 속에 빠져 있었다. 평범한 미술학도에서 어느 순간 배우가 되어 있었고,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지만 그에게 멜로 연기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사실 로맨틱 코미디보다 조금 더 굵직하고 드라마틱한 장르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 그런 장르가 거의 없고 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솔직히 스릴러 장르나 혼자서 영화를 이끄는 작품이 들어오면 ‘영화가 잘 되면 나도 잘 되겠지’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장르, 혼자 극을 이끌어 나가기엔 제 내공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건 다르니까. 제가 쓸 수 있는 표정, 연기가 멜로에 가까운데 슬픈 멜로보단 조금 더 가벼운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데뷔 초부터 맡았던 캐릭터가 너무 어려워서 특히나 절절하고 슬픈 멜로를 꺼려하게 된 것 같아요. 20대 초반에 너무 원숙한 캐릭터를 맡았고 심지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연기해서 힘들었어요. 애끓는 마음이나 슬픔도 자꾸 쓰면 마르거든요. 슬픔과 절절함을 경험하면 다시 채워질텐데 그러질 못하니 마구 소비되어서 이제 동이 난 것 같아요. 더 이상 내 안에서 꺼낼 수 있는 감정이 없으니 자꾸 똑 같은 표정, 똑 같은 느낌의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더 깊은 경험을 한 후에 깊은 멜로에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당분간은 안 하려구요.
문채원에게 조규장 감독은 자연스럽게 사랑스러워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문채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건 사랑스러움이 아닌 리얼함이었다. 극 속에서 문채원은 쉴 틈 없이 들이대면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을 연인이라 소개하는 유연석을 향해 억울함과 짜증을 표출한다. 마냥 사랑스러운 로코의 여주인공이 아닌 리얼한 짜증 연기가 그녀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더했다.

“짜증 연기를 연습한 것도 아니고 그런 성격도 아니에요. 사실 일을 하면서 들볶이는 순간에 감정을 삭히는 연습을 더 많이 하죠. 현장에 가면 다 사람 좋은 척 해야 하고, 연기를 안 할 땐 천사로 있어주길 바라는데 쉽지 않아요. 그런 상태에서 바로 연기로 빠르게 변화가 안 되고 아직 연기 자체도 제겐 버거워요. 미술을 해도 재능이 타고난 사람이 있고, 연기를 해도 타고난 센스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전 그런 배우도 아니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하지도 못해요. 그렇지만 저의 속도로 계속 갈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계속 하는 건 제가 아직 관객으로서 즐기는 게 많기 때문이에요. 이제 10년 차인데, 예전에는 그 10년이라는 숫자가 참 대단해 보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저도 10년이 되어 있더라구요. 10년이 되어도 어색하고 긴장되고 그래요.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즐거움보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더 커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는 힘든데,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영화로만 바라볼 때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그동안 뿌듯함이나 즐거움을 못 느껴본 것 같은데 아직 연기의 즐거움을 몰라서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는 새 10년 차 배우가 된 문채원.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보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한 그는 관객으로서 ‘그날의 분위기’를 어떻게 보았을까.

“최근에 세고 자극적인 영화가 많았잖아요. 그런 영화들 사이에서 잠시 쉬어가는 영화가 될거라 생각해요. 관객으로서 ‘내부자들’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저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그 영화에 호응을 하는 건 카타르시스 때문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니까. 그래서 그런 장르의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거겠죠. 아마 한 10년은 더 나오지 않을까요?(웃음) 하지만 우리 영화는 분명 ‘내부자들’과는 달라요. ’그날의 분위기’만의 서정성이 있죠. 크고 자극적인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어서 관객들이 배신감이 들까요? 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영화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쉼표가 되길 바라는 영화를 들고 돌아왔지만 배우 문채원의 행보는 쉴 틈이 없다. 차기작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위한 준비로 여념이 없었고, 드라마 촬영을 위해 곧 태국으로 떠난다고 밝힌 그는 이후에는 또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가능성도 언급했다.

“일단은 드라마에 집중하려고 해요. 연말에 한 작품 더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절절한 멜로는 싫어요. 아직 감정이 다 채워지지 않아서 자신이 없어요. 사실 연기를 얼마나 오래할 지, 40대에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간절함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간절하기 때문에 오래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미술에 비하면 공동작업이라 완벽하게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지도 않아요. 하지만 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버틴다는 느낌보다는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지 가장 큰 고민이죠”

“그림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직업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학교를 가서 연기가 아닌 다른 걸 배워보고 싶은 바람도 있어요. 학교생활에 적응할 것이라는 자신은 없지만 공부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제 인생은 다르니까요. 미술도 연기도 아닌 새로운 걸 배워보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자연스럽게 30대를 맞이한 10년 차 배우 문채원은 연기와 자신의 삶에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 속 연기는 그런 문채원의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 묻어난다.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로코의 여주인공이 아닌 스스럼 없이 화를 내고, 당당히 자신의 사랑과 삶을 주장하는 ‘수정’은 문채원을 닮았다. 즐기지는 못해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그의 연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원숙해질지 기대된다.

(사진제공=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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